New Testament - 새로운 약속
13장
Exam

시험의 목적

델카도르는 트리에스테 대륙의 지도와 메리엘의 얼굴을 번갈아 보았다.

메리엘은 델카도르의 마음이 혼란스러워 집중하지 못하는 것인지도 모르고, 자신의 푸른색 의상이 마음에 들어 그러는 줄로만 알고 자태를 뽐냈다.

보다 못한 델카도르는 지도를 접어 버렸다.

“메리엘.”

“네?”

“인카르의 방위를 알고 있소?”

“그럼요. 물론이죠. 제일 중심은… 헬리시타인가요?”

“허허. 메리엘 당신. 치장할 줄만 알았지. 지적인 소양은 전혀 없군.”

“네에? 뭐라구요?”

“그럼, 열 두 사도의 노래는 아시오?”

“그럼요. 물론이죠. 할머니한테 배웠죠. 부를 수도 있어요. 요새 새로 광장에 나타난 음유시인처럼.”

“그래? 그렇지…. 그 노래는 할머니의 할머니. 또 그 할머니의 할머니 때부터 있었지…. 부탁하오.”

“좋아요.”

메리엘은 두 손가락을 꼭 부여잡고 노래하기 시작했다.

파르카는 하나이자 둘이며. 쥬토는 제노아를 일으키네.

아크는 쌍둥이 동굴에서 태어나고. 마블라이는 엘타로 가리.

은둔자 반저 페니키에 머물리.

그러나 헬리온이여.

당신은 숨지 마소서.

바라트에서 발하소서.

시즈는 헬리시타를 축복하며. 론도우는 흑해에 숨었네.

큔은 아름다운 네오스로 향하고. 눈바이스는 자덴에 가리.

테라의 섬광 아발론에 머물리.

그러나 세라피여.

쉿. 입을 다물어라.
쉿. 너는 입을 다물어라.

델카도르는 노래를 들으며 길게 자란 회색 수염을 쓸어 내렸다.

‘그곳으로 보낸 것은…. 내가 잘못한 것인지도…. 허나. 로아성이 관련되는 것은 내가 원치 않아. 타마라의 요구대로 시간은 충분히 끌 수 있을 테니 로아에 보복하지는 않겠지….’

웃음 끝에 근심이 서린 델카도르의 모습과는 사뭇 다른 메리엘의 상기된 표정은 곡조를 따라 더욱 붉어졌다.

모르트 초원을 지나가면서도 파그노는 쉬지 않고 재잘거렸다.

“괴물들을 제외하고는 온통 풀이군.”

“이 정도야 애벌레들이지.”

룸바르트는 아라몬을 향해 검을 휙휙 돌렸다. 눈과 코 대신 흡착판이 얼굴을 차지하고 있는 흙색 아라몬 세네 마리가 금방 룸바르트에게 절단이 났다.

“오, 멋지군!”

“역시 그렇지?”

“하하하.”

“앗! 저기 마을도 있는데?”

“사람이 없잖아. 죽은 마을이야.”

“그렇군.”

파그노와 룸바르트는 묘하게 죽이 맞았다.

“어째 너무 조용한데?”

“네?”

“칸, 너 말이야. 파그노는 평소와 다름없이 저렇게 신나게 떠드는데. 칸은 너무 조용한걸. 어디 아픈 거야?”
잔바그 그레이의 말에 칸의 얼굴이 순식간에 벌겋게 달아올랐다.

“그… 그렇지 않아요. 아픈데 없습니다….”

“그러지 말고 아프면 말해요. 내가 봐줄게요.”

시리엘 아즈가 칸의 어깨를 잡으며 말했다.

“역시 시리엘양은 천사라니까. 하하.”

잔바크 그레이는 시리엘 아즈를 보며 시원하게 웃었다. 시리엘 아즈도 같이 웃었다. 칸만 끝도 없이 얼굴이 계속해서 달아오르고 있었다.

“그런데 우리 이렇게 웃으면서 가도 되는 것인가?”

헤이치 페드론은 앞서 가는 일행들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물었다.

그러나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지금 우리는 아발론 섬에 가고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마침내 가리온이 대답했다.

“안다고? 그렇다면 아발론 섬이 어떤 곳인지는 아는가?”

“크레스포와 멀지 않은 곳이죠.”

타마라가 가리온 대신 대꾸했다.

“아마 가리온이 아발론 섬에 가는 이유는 그 때문일 거예요.”

가리온은 타마라의 얼굴을 보지 않았다. 아니, 타마라가 가리온의 속마음을 켜켜이 들어내고 있었기 때문에 볼 수가 없었다. 어제부터 타마라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가리온의 심장을 쑤시고 있었다.

타마라의 말대로 가리온은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아발론 섬에 가는 것이었다. 크레스포와 가까운, 이계 출신 암살자들의 고향 아발론으로.
“무슨 말이야? 가리온. 타마라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건가?”

“저도 모르겠습니다. 델카도르님은 아발론으로 가서 정찰을 하라고 했습니다. 저는 지시를 따를 뿐입니다.”

그것은 거짓말이었다.

“지시도 지시 나름이지! 모두 죽을 수 있어!”

가리온은 헤이치 페드론에게 더 이상 대답하지 않았다.

“에바! 자네가 말 좀 해보게.”

에바는 가리온처럼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타마라처럼 에바도 가리온의 심정을 알고 있었다.

‘슈마트라 초이 때문이야….’

에바는 아버지를 찾으려는 가리온을 말릴 수가 없었다. 경우는 조금 틀리겠지만 가족을 애타게 찾는 그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죽는 것은 두렵지 않아요.”

가리온은 에바를 보았다. 에바의 촉촉한 하늘색 눈동자와 발그레한 입술이 떨리고 있었다.

“진심이에요.”

에바는 미소를 지었다.

가리온의 어두운 얼굴에도 미소가 스쳤다.

“아발론 섬에 갈 겁니다.

가리온은 헤이치 페드론을 향해 굳게 대답했다.

델카도르는 가리온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가리온은 어쩐지 그 눈빛이 부담스러웠다. 자신이 큰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렇지만 후회하기에는 너무 늦어버렸다.

가리온은 이미 문을 두드렸다.

“자네, 청기사단장이군?”

“어머! 가리온!”

“자네 안색이 좋지 않군.”

가리온은 머뭇거리다 인사치레를 했다.

“로아가 너무 아름다워 그런가 봅니다.”

“뭐? 하하. 자네는 이상한 농담을 하는군. 하하. 자, 들어오게.”

가리온은 델카도르의 집무실로 들어갔다.

“전 이만 가겠습니다.”

“그래? 그래…. 그렇게 하게.”

타마라는 찬바람을 일으키며 가리온의 옆을 지나갔다.

“자네는 무슨 일로 왔는가?”

델카도르가 다시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실은….”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델카도르의 눈빛은 무척이나 맑았다. 가리온은 그 눈빛에 자신의 진심을 털어놓아도 될지 망설였다.

“괜찮네. 말하게.”

“저는 비나엘르 파라이님의 말씀에 따라 이곳에 왔습니다.”

가리온은 자신이 지금 하는 행동이 잘못된 것이 아니길 마음 속으로 빌었다.

“비나엘르 파라이님은 복수의 빙곡에 가라고 하셨습니다.”

“그래?”

델카도르는 이미 알고 있던 이야기지만 가리온의 이야기를 멈추지 않았다.

“그곳에. 백기사단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렇지.”

“그 일 때문에. 이곳에 왔습니다.”

말을 마친 가리온은 잠시 생각했다. 델카도르는 인내심 있게 기다렸다.

“사실.”

가리온은 조금만 말하기로 했다. 맑은 눈을 가진 델카도르는 나쁜 사람 같지는 않았다. 그리고 가리온은 그에게 도움을 받아야 했다.

“저는 듀스 마블을 쫓고 있습니다. 듀스 마블은 헬리시타로부터 도망쳐 카론을 부활시킬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세상이 멸망하기 전에. 그를 잡아야 합니다.”

가리온은 말할 수 있는 전부를 말했다.

“정말인가?”

“그렇습니다.”

“예외군. 듀스 마블은 그랜드 폴을 두려워하는 줄 알았는데.”

“비나엘르 파라이님은.”

“아. 더 설명하지 않아도 되네.”

가리온은 델카도르가 듀스 마블의 편을 드는 것 같아 부아가 났지만 곧 진정했다. 델카도르는 제 3자일 뿐이었다.

“할 말은 그게 다인가?”

“듀스 마블의 행방을 알고 싶습니다.”

델카도르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자네가 정찰을 갔다 온다면, 그 동안 내가 알아보겠네.”

가리온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디로 갈지는 내일 모두와 함께 이야기하지.”

한 번 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만 가보게.”

“저, 그리고 이 일은.”

“그래. 비밀로 해주겠네. 걱정말고 가보게.”

가리온은 쫓기듯이 델카도르의 방을 나왔다.

먼저 나갔던 타마라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헤이치 페드론은 여전히 불만을 제시했다.

“물론 자네의 결정에 따르기로 했었지만, 난 설마 자네가 가겠다고 할 줄은 몰랐네.”

“난 알고 있었죠.”

“타마라!”

“가리온이 가지 않을 리가 없지요. 그렇지만 난 그곳에 가지 않겠어요. 가고 싶다면 당신들끼리 가요. 살아 돌아온다면, 그때 다시 보도록 하죠.”

“뭐? 그래도 우리가 믿을 만한 건 타마라 자네뿐이라네! 자네는 세그날레잖아!”

헤이치 페드론이 매달렸지만 타마라는 사라져 버렸다.

“타마라! 이렇게 가버리면!”

“신경 쓰지 맙시다.”

가리온은 배를 타기 위해 모르트 초원에서 서쪽으로 계속 직진했다.

초원이 끝나자 울창하지만 작은 숲이 나왔다.

트리에스테의 북부, 모이라이 지역이었지만 숲은 푸르고 싱그러웠다. 멀리에서 파도 소리가 들려오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이계의 생명체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이런 곳이 있었다니…!”

“트리에스테 대륙을 정말로 축복 받은 곳이예요.”

시리엘은 땅에 엎드려 입을 맞추었다.

“그런데 이곳을 무엇이라고 불러야 하지?”

“레퀴에스.”

아발론 섬에 가는 것을 가장 반대했던 헤이치 페드론이 대답했다.

“여기부터가 세그날레들의 구역이네.”

웃음과 감탄이 일시에 멈추었다.

가리온의 일행은 바로 지옥 문 앞까지 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