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Norak - 이교도의 유물
3장
The Tyrant Tree

고서를 품은 바기족

중천에 떴던 해가 기울면서, 아레스 숲은 점점 더 적막해졌다.

새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숲도 이제 곧 이계의 오염체들이 나타나 짓밟을 것을 예감하는 것만 같았다. 어쩌면 지금도 어디에선가 오염체들이 숲을 불사르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가리온과 시에나가 그리폰을 타고 하늘로 날아오를 무렵, 누트 샤인은 아레스 숲을 거의 빠져 나오고 있었다. 해가 뜨겁게 내리쬐고 있었지만 누트 샤인은 누더기에 가까운 망토를 벗지 않았다.

이렇게 멀리까지 나온 바기족은 누트 샤인이 처음이었다.

그랜드 폴 당시 방주 아르카나로 피신하지 못한 불행한 사람들, 그들이 바로 바기족이었다.

이계의 문이 트리에스테에 열리던 날, 방주 아르카나로 피신하지 못했던 사람들은 대부분 죽어버렸다. 그 와중에서 살아남은 사람들도 있었으나, 그들은 이계가 열리면서 발생한 지옥의 연기에 신체가 변형되는 고통을 겪었다.

팔이나 다리 같은 신체의 일부분만 변형되는 경우도 있었지만, 사지 전체가 부풀어 오르거나 꼬여버리면서 괴물처럼 변형되는 경우도 많았다. 누트 샤인도 그렇게 변형된 사람들 중 하나였다. 원래 괴물은 누구인지 또 누가 변형되어 버린 인간인지 전혀 알아 볼 수 없는 상황에서도 시간은 흘렀고 이계의 흔적들은 트리에스테 대륙에서 차차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 무렵에 방주 아르카나의 문이 열렸다. 그리고 그 안에서 너무나도 건강해 보이는, 완전한 인간들이 쏟아져 나왔다.

몇몇의 변형인간들은 완전한 신체와 비견되는 자신의 모습이 두려워 평원에서 사라져 버렸고, 또 다른 이들은 아르카나로 미처 피하지 못해 괴물의 몸으로 바뀌어버린 분노를 풀 길이 없어 방주에서 막 나온 인간들에게 공격을 가하기도 했다. 하지만 공격은 부질없는 짓이었다. 방주에서 나온 기사들의 검은 날카로웠고, 마법사들의 마법은 혹독했다. 게다가 궁사들의 활촉은 너무도 정확했다. 온전한 인간들에게 두려움을 느낀 변형체들은 대륙의 중앙에서 점차 사라졌다. 누트 샤인도 미로의 숲 건너로 몸을 숨겼다. 그리고 그곳에서 바기족이 탄생되었다.

누트 샤인은 변형되어버린 몸을 더욱 꼭꼭 감추며 얼굴조차 드러내지 않았지만, 망토는 해질 대로 해져서 옷감 본래의 짙은 갈색은 황토빛이 되어 버렸고, 구멍도 여러 곳 뚫려 너덜너덜했다.

누트 샤인의 몸집은 크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덩치가 거의 없다고 하는 것이 옳았다. 난쟁이가 있다면 이보다도 작을까. 그러나 그 작은 몸 덕분에 너덜너덜해진 망토자락으로도 온 몸을 가릴 수 있었다.
누트 샤인이 처음 바기족 촌락을 출발할 때만 하더라도 행색이 이토록 초라하지는 않았다. 그때는 망토의 질감도 매우 두껍고 부드러운 천이었고, 허기를 채울 수 있는 음식 보따리도 넉넉했다. 신발도 미로의 숲에 있는 양질의 나무로 만든 최고급이었다.

바기족은 일반인들에게 자신을 드러내지 않은 채 미로의 숲 건너에 숨어 살았던 탓으로 부유한 종족은 아니었다. 하지만 누트 샤인은 바기족 촌락을 일구어낸 장본인이었고, 무엇보다도 이 여행의 목적 자체가 바기족에게는 구원과도 같은 일이었기에 모든 것이 모자라지 않게 준비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행은 역시 쉽지 않았다. 바기족 촌락에서 출발하여 자덴을 거쳐서 카시미르 산맥을 넘고, 브라이켄 성을 지나 아레스 숲 건너 노라크 동굴까지 가는 길 자체가 아주 먼 길이기도 했지만, 바기족의 특성상 일반인들과 어울리는 것은 유익한 일이 아니었기 때문에 누트 샤인은 열 달 동안 주로 밤에만 이동해야 했던 것이다. 게다가 자덴과 브라이켄 성에는 괴물을 잡아 공을 세우려는데 혈안이 되어 있는 기사들이 수도 없이 많았다. 때문에 이계의 오염체로 오인 받기 쉬운 누트 샤인은 기사들의 사냥감이 되지 않기 위해 특별히 더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아레스 숲도 험난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처음 그는 우거진 수풀이 사람들의 이목을 가려줄 것이라 예상했지만, 그 예상은 빗나가 버렸다.

영웅심에 불타올라 아레스 숲을 헤치고 다니는 기사들의 숫자는 성 안보다는 월등히 적은 것이 사실이었다. 그러나 성 밖으로 나온 기사들은 이미 죽음을 각오하고 나온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그만큼 더 사나웠다. 그리고 누트 샤인이 브라이켄 성으로 흘러 들어가는 호수 옆에 앉아 쉬고 있을 때 누트 샤인의 작디 작은 몸집은 덤불을 이 잡듯 헤치던 사나운 기사들에게 발각되고 말았다.

"이봐, 저기. 저거. 오염체 아니야?"

"하긴, 인간의 모습은 아닌데."

"한번 다가가 보자."

기사들의 둔탁한 갑옷소리가 풀잎을 스쳤지만, 누트 샤인은 생각에 잠겨 기사들이 가까이 다가오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이제 여기만 지나가면……."

누트 샤인은 나무 그늘에 주저앉아 품 안에 감춰두었던 책 한 권을 끄집어내어, 부스럼이 더덕더덕 눌어붙어 썩어가는 표지를 정성스럽게 들여다보고 있었다. 보물처럼 지켜왔던 책이었다. 가만히 책을 쓰다듬어 보던 누트 샤인은 고개를 들고 두리번거렸다. 혹시 누군가가 자신의 모습을 숨어서 지켜보지 않은가 갑자기 불안해졌던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살며시 다가오던 기사들과 누트 샤인의 눈동자가 딱 마주쳤다. 누트 샤인은 눈길이 부딪히자마자 들고 있던 책을 황급히 품속에 넣고 후다닥 경계 태세를 취했다.

“뭐, 뭐야. 저렇게 작은 인간도 있어?”

“이계 생물 아냐?”

잠시 흠칫하던 기사들도 기합을 넣으며 한꺼번에 누트 샤인을 향해 달려갔다.

“에이이-! 이계 생물아! 죽어라!”

누트 샤인을 둘러 싼 다섯 명이 동시에 검을 들어 정면으로 내리치려는 순간, 눈이 튀어나올 듯한 통증이 먼저 기사들의 몸을 후려쳤다.

그들은 풀이 무성한 땅 위에 털썩 쓰러졌다. 기사들이 땅에 쓰러지자 그들의 눈 옆에서 길고 가느다란 것이 떨어지더니 원을 그리며 줄어들기 시작했다. 그 길고 가느다란 물체에서 붉고 진한 피가 뚝뚝 떨어졌다. 피곤했던 몸에 원기가 회복되는 것을 느낀 누트 샤인은 입맛을 다셨다. 길고 가느다란 그것은 점차 짧아지면서 누트 샤인의 허름한 망토 속으로 사라졌다.

"멍청한 것들. 크크크……."

바기족의 1대 족장 누트 샤인은 촉수를 가진 오염체였다.

누트 샤인은 뙤약볕 아래를 걷기 시작했다. 다시 노라크 동굴로 출발하는 참이었다.

적막한 아레스 숲에는 더 이상 사람의 흔적이라곤 보이지 않았다. 오염체가 두려운 기사들의 발걸음이 여기까지는 미치지 못한 듯 했다.

그늘 하나 없는 땡볕 아래를 터벅터벅 걷는 동안 누트 샤인은 다시 피로해지기 시작했다. 이를 악물고 맥이 다 빠져나간 몸을 이끌어 힘들게 발걸음을 옮기고 또 옮겼다.

말라비틀어질 대로 비틀어진 몸에서는 끈끈한 진땀이 빠지짓 빠지짓 스며 나왔다. 그는 이제 점점 땅과 하늘, 그리고 주위의 모든 것들을 구별하기도 힘들어졌다. 이렇게는 더 이상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자 잠시 걸음을 멈추어 호흡을 가다듬었다.

가쁘게 내쉬는 숨결에 혀끝이 갈라지는 듯 바짝 말라왔다. 목이라도 축이고 싶었지만, 주위에는 작은 물 웅덩이조차 보이지 않았다.

땅에서는 찜통 같은 열기가 확확 치밀어 올랐고, 뜨거운 햇빛은 정수리로 사정없이 내리쬐었다. 얼마나 걸어왔는지, 열에 뜬 머릿속이 몽롱했다. 자신의 땀으로라도 목을 축이고 싶다는 생각이 목마름보다도 간절해 졌을 때, 드디어 저 멀리 거대한 나무가 보였다.

그 아래로는 수많은 무덤이 넓게 펼쳐져 있었다. 틀림없는 “폭군의 나무 아래 잠들어 있는 용사의 무덤”이었다. 누트 샤인은 가슴 속 깊이 감추고 있던 낡은 책을 다시 꺼냈다. 지금까지 누트 샤인의 희망을 줄기차게 이어주던 세월을 지켜낸 책이었다. 책은 누트 샤인의 망토만큼이나 낡아 있었다.

가죽으로 된 책 표지를 넘기자 붉은 속지에 “서기관 샤인에게”라는 글씨가 멋진 흘림체로 쓰여 있었다. 누트 샤인은 그 글씨를 손으로 쓰다듬었다. 그렇게 하면 자신의 화려했던 과거가 되살아날 것만 같았다. 몇 번인가 쓰다듬어 본 뒤, 금방이라도 부스러져 먼지가 되어 버릴 것만 같은 책갈피를 한 장 한 장 정성스럽게 넘겼다.

“아-.”

감격과 허탈, 그리고 한탄이 뒤엉킨 한숨 소리가 책장을 넘기던 누트 샤인의 손을 멈추게 했다.

손이 멈춘 곳은 누렇게 바래어 있었다. 이미 수없이 넘겨보았던 책이었다. 그는 거의 울먹이는 목소리로 읽어나갔다.

“신과 가까운 자가……. 폭군의 나무 아래 잠들어 있는……. 용사의 무덤에 들 때……. 시간의 파괴가……. 재현되리라……. 시간의……. 시간의 파괴가……. 재현되리라…….”

오래된 책에 새로운 눈물 자국이 생겼다. 누트 샤인은 혹시나 눈물이 번져 종이가 망가질까 걱정했지만, 이미 낡을 대로 낡은 책갈피는 담담하게 누트 샤인의 눈물을 그대로 받아 들였다. 문구를 곱씹어 음미하던 누트 샤인은 책에서 눈을 떼고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는 자신의 눈을 확인하듯이 거대한 나무를 올려다보았다.

하늘을 가리는 풍성한 잎들, 곧추 서 있는 아름드리 나무 기둥, 그리고 빽빽하게 얽혀진 뿌리가 차례로 눈에 들어왔다.

나무 뿌리는 사방으로 넓게 퍼져, 마치 영웅들의 무덤이 폭군의 뿌리를 갉아 먹는 듯한 인상을 주었다. 거대한 나무는 폭군의 나무였고, 늘어서 있는 무덤들이 바로 용사의 무덤이었다. 얽히고 설켜있는 뿌리들을 유심히 바라보던 누트 샤인의 눈에 작은 빛이 하나 들어왔다.

"저 곳에 시간의 파괴를 일으킬 수 있는 유물이!"

누트 샤인은 빛이 나는 방향으로 다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물먹은 솜처럼 피곤에 지친 터라 발을 떼어놓을 때마다 머리가 울려오는 듯한 통증이 느껴졌다. 그러나 아픔을 누르려는 것처럼 눈에 더욱 힘을 주었다.

누트 샤인에게는 마지막이 될 수도 있었다. 누트 샤인은 자신의 생명이 그리 오래 남지 않았음을 느끼고 있었다. 인카르가 생긴지 142년. 원래는 인간이었던 자신이 이 세상에서 한없이 남아 있을 수는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시간이 더 흐르기 전에 일을 처리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러나 이제 겨우 시작임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힘든 여정이었다. 앞으로 남은 길은 여전히 험난했다. 누트 샤인은 이번 일이 끝나면 남은 여행에 바기족의 건강한 젊은이를 대신 보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호흡을 가다듬고 발을 떼려는 순간, 누트 샤인은 햇빛이 가려지는 것을 느꼈다.

한 마리의 그리폰이 공중을 날아, 노라크 동굴로 다가오고 있었다. 심상치 않은 눈길로 하늘을 보던 누트 샤인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숨을 곳을 찾는 것이었다.

‘그리폰이 하늘을 날면서도 나를 습격하지 않은 건, 누군가가 타고 있기 때문일 거야. 이 노라크 동굴까지 그리폰을 타고 오다니……. 누구지? 일단 몸을 피해야겠어.’

주위에는 온통 파란 잔디가 덮인 무덤뿐이었다. 수풀 쪽을 건너다보았지만, 그리폰이 아레스 숲에 착지할 듯 보였기 때문에 그 쪽으로 가는 것은 무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트 샤인은 어쩔 수 없이 길가에서 조금 벗어난 곳의 무덤 뒤에 몸을 숨기고 그리폰의 행동을 주시했다.

그리폰은 곧 아레스 숲의 울창한 침엽수에 가려졌다. 예상대로 수풀에 내려앉은 것이다. 그러나 누트 샤인은 움직이지 않았다. 누군가가 노라크 동굴 쪽으로 올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작은 몸집을 지닌 누트 샤인은 그 작은 몸을 더욱 움츠리며 아레스 숲 쪽을 쏘아 보았다.

무덤가에서 조금 떨어진 숲 공터에 그리폰은 내려앉았다. 시에나보다 먼저 그리폰에서 내린 가리온은 시에나가 내려서는 것을 도와주려 손을 내밀었지만, 시에나는 거절의 웃음을 생긋 날리며 혼자 사뿐히 땅에 섰다. 시에나는 그리폰에게 다가가 목덜미를 쓸어 내리며 조용히 소곤거렸다. 그리폰은 낮게 끼룩거리더니 숲으로 사라졌다.

“먹을 것을 찾으러 가는 거예요. 가리온님과 제가 노라크 동굴에서의 임무를 완성하고 나올 때쯤이면 그리폰이 사슴 고기를 잡아놓고 기다리고 있을 거예요. 시장하시더라도 그때까지만 좀 참아주시겠어요?”

“고맙소.”

“자, 그럼. 우선 우리의 임무를 수행해 볼까요?”

시에나는 다시 생긋 웃으며 무덤 쪽으로 돌아서서 걸어갔다. 가리온은 시에나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참 친절한 사람이로군 하고 생각했다.

“빨리 오세요-.”

미소를 지으며 부르는 시에나의 목소리는 새털처럼 가벼웠다. 마주 보는 가리온의 얼굴에도 미소가 번졌다.

시에나의 얼굴에는 미소뿐이었지만, 속으로는 바짝 경계하고 있었다. 무덤 근처에서 누군가 엿보고 있다는 느낌을 받은 것이다. 영웅들의 무덤을 지나 나무 밑동에 다다랐을 때, 시에나는 돌아서서 무덤을 휘 둘러보았지만, 아무것도 찾을 수 없었다.

‘나무 한 그루 없는 곳이라, 몸을 가리기가 쉽지 않을 텐데…….’

시에나는 석연치 않았지만 일단 동굴에 들어가기로 했다. 어쨌든 급한 건 노라크 동굴을 선점하는 것이었다.

“여기부터는 내가 앞장서겠소.”

가리온은 시에나의 얼굴에 근심스러운 표정이 얼핏 스치자, 먼저 나선 것이다. 가리온의 말에 시에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제가 앞서서 동굴을 밝히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저는 기사로서, 인카르의 아가씨를 모실 의무가 있습니다. 동굴 안에서 어떤 위험한 일이 생길지 모릅니다.”

가리온은 말을 마치고, 먼저 몸을 돌려 동굴 안으로 들어섰다. 환한 곳에서 어두운 곳으로 갑자기 들어가자 눈이 잠시 침침해졌지만, 곧 어둠에 익숙해지면서 시야가 또렷해왔다. 차갑고 냉랭한 동굴의 한기가 어둠처럼 몰려 왔다.

“춥지 않소?”

가리온은 시에나가 걱정되었다.

“견딜만해요. 앞에 빛이라도 보이시나요?”

시에나는 마법사의 옷인 오클라스가 얇다는 것이 너무나 아쉬웠다. 가볍고 나풀거리는 의상은 포스 엘리멘터에 집중하는데 유용했지만,동굴 안에서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았다.
“저쪽에, 무언가 빛이 보이는 것 같군요.”

가리온의 말처럼 앞쪽에서 작은 빛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열 걸음 정도만 걸으면 될 것 같았다. 시에나는 일단 버텨보기로 했다.

“가리온님, 앞에는 아직 아무 것도 나타나지 않았나요?”

열 걸음을 걸었지만, 빛은 여전히 열 걸음의 거리였다. 시에나의 입술은 점점 더 파래져 갔다. 가리온과 시에나가 동굴 안으로 들어간 뒤 누트 샤인은 무덤 뒤에서 나와 남은 기력까지 있는 대로 짜내어 동굴 앞으로 재빨리 기어갔다. 뿌리 밑에 숨어 동굴 쪽으로 귀를 쫑긋 세우자 발자국이 울리는 소리가 들렸다.

‘기사 놈의 발소리로군. 가만히 따라가야겠어.’

누트 샤인은 무덤 뒤에 숨어 있을 때, 기사의 검 크루어를 들고 있는 가리온과 오클라스를 입은 시에나를 똑똑히 보았던 것이다.

기사와 마법사가 노라크 동굴까지 찾아온 것으로 보아, 인카르 쪽에서도 노라크 교도들의 유물에 대해서 알아낸 것이 틀림없다고 짐작한 누트 샤인은 서둘러 동굴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평생의 희망을 인카르에게 빼앗긴다는 것은 말도 안 될 일이었다. 인카르건, 노라크건, 그 어느 쪽도 상관없었다. 마지막 기회를 놓치지 않으리라는 집념으로 누트 샤인의 눈은 더욱 커졌다. 때를 맞춰 망토 속에 가려져 있던촉수들도 밖으로 슬금슬금 기어 나왔다.

누트 샤인이 눈을 번뜩이며 노라크 동굴의 어두운 통로 속을 기어가기 시작하자, 오래된 나무의 뿌리들이 동굴의 입구를 가리기 시작했다.